일방향이라고 생각해 온 나와 형의 관계가 어쩌면 쌍방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매주 그랬던거처럼 형은 사회과학관 앞까지 나를 데려다줬고 나는 공학관으로 돌아갔다. 지금까지 나는 형의 배웅에 단한번도 뒤돌아 본 적이 없었다. 사회과학관 광장을 반 쯤 벗어났을 때 아쉬움에 뒤돌아 마주친건 나를 향해있는 형의 눈이었다. 사람들 사이로 손을 흔드는 형에게 한발자국을 내딛었다. 묻고 싶은게 많았다. 형, 내가 착각하는 건가요.형은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봐요. 언제부터 나를 그렇게 봤어요. 언제부터 내 뒷모습만 봤어요. 내가 나를 알기 전까지는 전혀 알 수 없던 것들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형과 내사이는 불과 두걸음 뿐이었다.





“김인성이랑 잘 놀고 있어?”

공학관 앞 정자에 멍하게 앉아있는데 영빈이형이 꽤 살갑게 물어본다.


“몰라요.”

“왜 몰라.”

“모르겠어요.”

“술 사줄까?”


영빈이형 물음에 옆에 내려둔 가방을 챙겨들었다. 닭갈비 먹고싶어요.


“뭐를 모르겠는데.”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내 앞접시 위로 영빈이형이 닭갈비를 덜어주며 말했다.


“형. 제가 착각하는 걸까요.”


너무 헷갈려요. 몰랐으니까요, 지금까지. 근데 내가 생각하는게 맞을까. 자꾸 나를 헷갈리게 해요. 뭐라고 말해야 하죠. 작은 행동 하나에 착각하고 기대하는데 알고보니 그게 아니면, 나 혼자 착각한거면. 상대가 진심이라도 걱정돼요. 시작하기가 겁나요. 웃기죠. 진심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시작을 겁내고. 답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인성이형을 알 수 없으니까. 형 마음을 풀어내고 싶은데 어려워요. 답안지 열어서 살짝이라도 볼 수 있으면 내가 정답인지 아닌지 알텐데 모르잖아요. 인성이형은 아니니까 스쳐가는 감정이라 생각하고 보내려고 했거든요. 근데 형이 맞으면. 내 가정이 맞아서 이게 정답이면 어떻게 하죠. 다 괜찮다 했거든요. 다들 괜찮다는데 내가 안괜찮아요. 남들은 이해한다는데 사실 무서워요. 다른 사람이 알게되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죠. 

 


“이상혁. 사람한테 정답은 없어. 남들이 뭐라고 한다고 해도 겁먹지마. 너 이해하는 주변 사람들만 봐. 솔직하게 이런 말은 못해주겠다. 사람이 사랑 감정만 쫒아 갈 수는 없어. 너가 무서우면 무서워해. 용기 안내도 돼. 세상에 내편은 나야. 나 아니면 나를 이해 할 사람 없어. 지금 너가 무서워 하는거 남들이 너 속까지 다 알아? 너밖에 모르잖아. 너가 무서워도 정말 궁금하고 알고싶으면 직접 부딪혀. 그리고 나중에 너가 진짜 확신이 생기고 후회 하지 않을 수 있겠다 싶을 때 그 때 니 마음 따라가. 사람 마음은 정답이 없다고. 너 마음 따라가는게 정답이야.”



내 마음 따라가는게 정답이다. 인성이형한테 전화를 걸었다. 형, 어디에요. 아뇨, 조금. 올래요? 영빈이형이랑 있는데.



영빈이형이 생각이 힘들 땐 몸을 혹사시키는게 좋다며 실험실 청소 한번 하겠냐고 한다. 저 원래 생각 없이 살아서 괜찮은데요. 



“무슨 대낮부터 술을 먹고 있어.” 

“얘가 마음이 괴롭대.”

“상혁이가?”


가게로 들어오면서 낮술 먹는 우리를 타박하던 인성이형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무슨일이야, 상혁아. 세차게 고개를 저어줬다. 아 김영빈. 말조심 좀. 


“답안지가 없어서 힘들대. 원하는걸 얻기 위해서는 답지가 아니라 직접 풀고 부딪히는건데. 그치 인성아.”


영빈이형 말이 다 맞다. 내가 원하는건 우리의 결과고 나는 그것을 얻기 위해 부딪히고 깨야한다. 무섭다고 숨기기만 하면 끝까지 가질 수 없다. 


한창 내 생각 속에 빠져있던 중 체육대회라는 단어가 들려 형들 대화에 귀기울였다. 오 상품이 있구나.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게 한다. 금전은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엥? 베스트 커플상이 뭐에요.


"말 그대로 베스트 커플. 남녀 환장 캐미, 환상 캐미 뽑아서 상품 뿌린대. 다른과도 그거 제일 기대하던데."

"신청 해서 나가는 거에요?"

"아니. 각 과에서 추천."

"흥미진진해."


원래 남 연애가 제일 재밌다. 이제까지 연애 상담하면서 땅굴파던 내 흥미를 한껏 올려 놓더니 영빈이형은 실험실에서 찾는다며 올라갈 채비를 했다. 이제 막 재밌어질 참이었는데 좀만 더 말해주고 가지. 형 잠깐만요. 일어나려는 영빈이형 손을 붙잡았다. 



"형, 고마워요. 그리고,"

"고맙긴. 고생하지 마라, 상혁아."

"아니 형,"

"괜찮아. 진짜로. 좋은 조언은 못해준거 같아서 내가 미안하지."

"아니요. 형. 형이 술 산다 했잖아요. 계산 꼭 하고 가시라구요."

“인성아 봤지. 이상혁 이런 애야."



가방을 들고 일어나면서 영빈이형이 말했다.


“인성아. 이상혁이 찾는 답은 너가 같이 찾아줘. 그리고 이상혁아. 너 삽질 진짜 잘하더라. 괜히 엄한데 힘 빼지말고. 갈게.”



영빈이형이 지나간 자리에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한잔 할래요? 인성이형 술잔에 소주를 채우며 말했다. 형은 잠자코 채워지는 술잔만 바라봤다. 내 잔을 형의 잔에 맞추며 물었다. 형, 저는 형한테 뭐에요?


아슬아슬 하게 넘칠듯한 술잔이 내 기분같다. 쏟을까 겁나서 들기 조차 버거운. 쏟아져 담지 못하더라도 부딪혀 삼킨다. 


“뭐가 알고 싶은거야?”

“형이요. 형이 알고 싶어요.”

“너가 도망갈까봐 겁나. 나는 너가,”


인성이형이 가득 담긴 술잔을 들었다. 찰랑이던 액체는 형의 손가락을 타고 흘러 테이블에 한방울씩 떨어져 고였다. 


"술같아. 하루는 달고, 하루는 물같아. 그리고 하루는 삼키지도 못할 만큼 쓴데 결국은 취해있어. 아무것도 못느낄 만큼 취해서 내가 아닌거 같게 해. 너는 나한테 그래. 입밖으로 말 할 자신이 없었어. 더이상 볼 수 조차 없을까봐. 근데 요즘 너 눈빛에 내가 헷갈려. 욕심내고 싶지 않았는데 자꾸만 기대한다고. 내가 착각하지 않게 흔들지마 상혁아.”

“흔든적 없어요. 착각도 아니에요.”



한방울씩 떨어져 고여버린 술만 응시하던 인성이형이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붉고 입가가 떨렸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해요. 재려는거 아니에요. 형도 알잖아요. 형도 무섭잖아요."



좋아한다라는 말 한마디는 꺼내지 않았지만 서로에게 확신만큼은 줄 수 있었다. 유태양 말이 맞았다. 숨기려 했어도 인성이형은 이미 눈치챘을거라고. 답은 만들어 지고 있었다. 나는 정답을 풀어내고 있었고 결론만 남겨뒀다. 아직은 빈칸으로 남겨진 자리를 채우기까지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다.


“근데 상혁아. 왜 그런 얘기를 닭갈비 집에서 하니.”

형의 한마디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아무튼 형. 이해해달라구요. 응. 나는 기다리다가 독거노인 돼도 좋아. 





새카만 단체 반팔티를 입고 옹기종기 모여 광합성을 즐기는 중이었다. 내리쬐는 햇빛에 등이 타들어 갈 때 쯔음 학생회 형들이 콜라를 나눠줬다. 아, 나는 탄산 안먹는데 누구 취향이냐. 다른 사람들은 별말 없이 잘만 받아 먹길래 김석우 주머니에 캔콜라를 넣었다. 사양말고 넣어둬. 잠시 캔으로 열기를 식히고 다시 쪼그려 앉아 있을 때 머리위로 차가운게 닿았다. 인성이형이다. 갑자기 느껴지는 냉기에 몸을 움츠리며 인성이형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을 끌어당겨 나를 일으켜 세운 형이 포카리를 건낸다. 덥지. 매년 체육대회마다 덥네.



“형. 해바라기들이 형 보고 다 고개를 숙였잖아요. 형이 태양보다 더 눈부셔서. 눈이 멀어 버린거 같아.”



미쳤구나. 농구팀 모이라는 말에 옆에 쪼그려 앉아있던 김석우가 엉덩이를 탈탈 털면서 일어난다. 석우야. 너한테 한 말이 아닌데 왜 니가 반응을 하지? 대답도 안하고 잔뜩 울상인 얼굴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뒷모습이 괜히 애잔하다. 쟤는 덩치가 산만한데 왜이렇게 애잔할까. 김석우 맞은편에서 걸어 오는 영빈이형이 이를 깍 깨물고 제 눈을 두 손가락으로 가르키더니 김석우 눈을 향해 두 손가락을 보여준다. 저 큰 덩치가 또 움츠러든다. 저거 또 찍혔네. 언제쯤 덩치값을 할 지 걱정이다.



분명 키가 큰 애들로만 모아서 팀을 꾸렸는데도 저 중에서 머리 하나가 우뚝 솟은거 보니 겉보기로는 에이스다. 선수들도 그 생각을 했나보다. 다 김석우만 막고 본다. 헛짚었을텐데. 쟤 존나 못하는데. 김석우는 피구를 잘한다. 태생이 겁쟁이인 김석우는 날아오는 공도 무서워서 못잡는다. 공이 무서워서 이리저리 도망다니다가 혼자 살아남는다. 김석우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농구공을 일단 피하고 봤다. 12년 피구인생 짬바 나온다. 그런 김석우를 보고 영빈이형이 이마를 짚는다. 아 저래서였구나. 영빈이형의 인내심에 애도를 보낸다. 우리 석우가 겁이 많아서 그렇지 얼마나 듬직한데요. 여름엔 그늘막이 겨울엔 바람막이. 에휴, 저 겁에 질린 표정이 너무 안타깝다. 속으로 영빈이형한테 뒤졌다 라고 생각할텐데 몸은 안따라주는 제 친구를 생각하니 너무 슬프다. 실험실 청소는 김석우가 하겠구나. 나만 그 생각을 한게 아니었나보다. 옆에서 김영균이 석우 또 곱등이 친구들 만나겠네. 하고 함께 애도를 표한다. 김석우가 에이스가 아니라는걸 알아버린 후로 김석우에게 오는 공격이 더 심해졌다. 야생에서 자기보다 약한 개체에게 린치를 가하는거 처럼. 김석우가 어쩌다 공을 쥐었을까. 어쩌다보니 김석우 손으로 공이 들어왔고 공은 "형아 안녕. 나는 농구공이고 골대에 던져질거야." 하고 말한다. 옆에서 영빈이형은 던져! 던지라고! 못하면 패스 하라고! 가슴을 내리치며 소리지른다. 이거 좀 환장인데?



역시 타고난 피지컬은 아무도 이길수가 없다. 남들보다 십센치나 더 긴 팔로 그냥 던졌을 뿐인데 골대로 공이 들어갔다. 눈을 꽉 감은 상태로 던졌는데 들어가는거 보니 저건 타고난 피지컬과 뽀록이 합쳐진 결과같다. 조물주께서 곱등이파티 만큼은 피하고 싶은 김석우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셨나보다. 



김석우의 뽀록 골에도 토목과는 졌다. 괜찮다. 하나라도 넣었잖니. 방금까지 뛰어서 숨이 찰텐데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는 김석우를 보니 영빈이 형과 마주하고 있다. 영빈이형은 김석우를 향해 엄지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고, 석우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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